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괴베클리 테페 (문단 편집) === 아르메니아의 반발 ===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이 원래 고대 아르메니아 시절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이 살던 영토라고 주장한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방주를 만들었다고 기록된 [[노아]]의 5대손 하이크(Hayk)를 민족의 시조로 보며, 대홍수 직후 처음 땅을 밟은 노아가 [[야훼]]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알려진 [[아라라트 산]]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고, 고대 아르메니아 시절에는 그 유명한 [[로마 제국]]과 전쟁을 벌일 정도로 깊은 역사를 가졌다. 그러다 1915년부터 1918년에 걸친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후 튀르키예에 여러 영토를 빼앗긴 채 아라라트 산 바깥쪽 작은 땅으로 내몰렸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의 긍지가 담긴 이 유적지를 원래부터 자신들의 역사인 것마냥 광고하는 튀르키예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고 있다. 반면 지금의 튀르키예인들의 정체성은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으로, 중세에 동양에서 이주해 온 자들의 후손이다. 민족적 자부심이 담긴 주장을 다 논외로 하더라도, 이 지역 원주민이 아르메니아인이라는 건 성경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고, 터키인들은 이주민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튀르키예 이름인 괴베클리 테페 대신 예전 아르메니아 이름인 '포르타사르(Portasar)'로 불러주길 희망한다. 그래서 포르타사르라는 알파벳으로 구글 검색하면 뜨는 사이트들도 죄다 아르메니아 관련 사이트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딱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이며, 영어나 프랑스어 등 위키피디아를 봐도 괴베클리 테페를 아르메니아어 명칭으로 설명하진 않는다. 다만 본문에 '아르메니아에서는 포르타사르라고 불린다.' 정도로만 언급할 뿐이다. 단순히 정치적인 논리 때문만이 아니라, 이 유적을 만든 이들이 아르메니아인이라는 증거 또한 없기 때문이다. 괴베클리 테페가 발굴된 지역은 전통적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자 문명권이었던 지역인데, 이 지역은 역사가 너무나 오래되고 문명 간 교류도 많이 오고 갔던지라 '''진짜 토착민족이 누구인가를 전 세계에서 가장 찾기 힘든 곳이다.''' 현재 괴베클리 테페 유적의 정착 시기는 1만 2천 년 전 쯤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아르메니아인이 이 지역에 이주해 온 시기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기원전 4천 년 전 즈음으로 추정되고 다수 민족이 된 것은 이슬람 발흥 이후인 7세기 즈음부터다.[* 이 지역이 동로마와 이슬람의 분쟁지대가 된 이후 기존 원주민인 셈계열 아람-아시리아인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이슬람의 위협을 피해 동로마 쪽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이 그 공백을 채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아르메니아인들이 그 이전부터 여기 살았다 하더라도, 1만 년 전 선조들이면 민족이 아닌 생물학적 분류로 넘어갈 정도의 시간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혈통이 전부 뒤섞였거나 이 지역 근방 토착민족 모두의 공통조상이라고 보는 편이 맞지, 현재의 민족분류를 대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괴베클리 테페를 지은 사람들이 튀르키예인들의 조상이 아님은 확실하지만, 아르메니아의 주장처럼 꼭 아르메니아의 조상들이 지은 것도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괴베클리 테페는 튀르키예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8년부터 관광객들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